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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회고록 2장] 월급 70만 원, 입사 이틀 만에 시작된 철야와 '빌런' PHP 개발자의 탄생

지난 1편에서 공장 노동자에서 개발자로의 급커브를 말씀드렸다면, 오늘은 그 화려한(?) 시작점이었던 제 첫 번째 직장 잔혹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. 1985년생 소띠, 고졸 비전공자가 대구 에이전시 판에서 겪은 '매운맛' 이야기입니다. 1. 잊을 수 없는 나의 첫 직장, 대명동 'W사' 제 첫 직장은 대구 대명동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 근처에 있던 'W사' 라는 웹 에이전시였습니다. 집에서 버스로 50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그곳에서 저는 생애 첫 '개발자' 타이틀을 달았습니다. 월급: 100만 원 (수습 3개월은 70만 원) 현실: 공장에서 받던 월급보다 훨씬 적었지만, '기술'을 배운다는 희망 하나로 버텼습니다. 충격: 입사 둘째 날부터 시작된 철야 . 새벽 3~4시에 퇴근해 9시에 출근하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. 좋아하던 게임은커녕 잠잘 시간도 없었습니다. 사수도 없이 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누나 한 명과 둘이서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,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지만 그게 당시 업계의 당연한 관행인 줄로만 알았습니다. 2. 눈알 빠지는 6개국어 HTML 노가다 제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어느 국제기구의 홈페이지 구축이었습니다. 무려 6개국어로 된 방대한 사이트였죠. 프로그램 로직은커녕, 제가 한 일은 오로지 HTML 노가다 였습니다. <!-- 당시 저를 괴롭혔던 끝없는 Table 구조 --> <table width="100%" border="0"> <tr> <td> <!-- 6개국어 번역본을 넣으며 tr, td 갯수가 맞는지 밤새 확인했습니다 --> </td> </tr> </table> 한국어도 잘 못 하는데 알 수 없는 외국어 텍스트가 깨지지는 않는지, table 태그가 꼬이지는 않았는지 눈알이 빠지도록 모니터를 쳐다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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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회고록 1장] 게임 폐인, 공장 노동자, 그리고 '책임'이라는 유산

[회고록 1장] 게임 폐인, 공장 노동자, 그리고 '책임'이라는 유산 20년 차 개발자가 되기까지, 그 첫 번째 이야기. 사랑받던 늦둥이, 6살에 멈춰버린 시간 나는 사랑받는 늦둥이였다.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, 늦은 나이에 나를 얻은 아버지는 끔찍이도 나를 아끼셨다. "우리 아들, 우리 아들" 하며 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다 들어주려 하셨다. 그 무한한 사랑 속에서, 나는 세상 두려울 게 없는 아이였다. 하지만 그 평화는 6살, 남들보다 1년 일찍 들어간 국민학교(초등학교) 시절 산산조각 났다. 내 인생을 바꾼 심부름, 그리고 병원 냄새 "친구 좀 데리고 올래?" 학원 선생님의 그 사소한 심부름만 아니었다면 내 인생은 달랐을까. 그 길로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. 학교는 4달을 쉬어야 했고, 이후 3년 동안 방학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. 나 하나 때문에 온 집안이 얼어붙었다. 하나뿐인 누나는 학원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. 금쪽같은 아들이 학원 가다 사고가 났으니, 딸마저 잘못될까 부모님은 전전긍긍하셨다. 그렇게 나는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게 되었다. 정규 교육 과정?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었다. 나는 그저 '노는 게 제일 좋은' 아이로 자라났다. 워크래프트, 공고, 그리고 패배감 중학교는 따라가지 못했고, 고등학교는 당연한 수순처럼 공고(공업고등학교)로 진학했다. 내 세상은 학교가 아니라 PC방에 있었다. 시험 기간은 공부하는 날이 아니라, 일찍 마쳐서 PC방에 가는 날이었다. 21살까지 내 인생의 전부는 '워크래프트' 였다. 게임 속 세상은 화려했다. '워크래프트 XP' 클랜, 한글 패치를 만들던 '니오스.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