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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회고록 1장] 게임 폐인, 공장 노동자, 그리고 '책임'이라는 유산




[회고록 1장] 게임 폐인, 공장 노동자, 그리고 '책임'이라는 유산

20년 차 개발자가 되기까지, 그 첫 번째 이야기.


사랑받던 늦둥이, 6살에 멈춰버린 시간

나는 사랑받는 늦둥이였다.
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, 늦은 나이에 나를 얻은 아버지는 끔찍이도 나를 아끼셨다. "우리 아들, 우리 아들" 하며 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다 들어주려 하셨다. 그 무한한 사랑 속에서, 나는 세상 두려울 게 없는 아이였다.

하지만 그 평화는 6살, 남들보다 1년 일찍 들어간 국민학교(초등학교) 시절 산산조각 났다.


내 인생을 바꾼 심부름, 그리고 병원 냄새

"친구 좀 데리고 올래?"

학원 선생님의 그 사소한 심부름만 아니었다면 내 인생은 달랐을까. 그 길로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. 학교는 4달을 쉬어야 했고, 이후 3년 동안 방학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.

나 하나 때문에 온 집안이 얼어붙었다. 하나뿐인 누나는 학원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. 금쪽같은 아들이 학원 가다 사고가 났으니, 딸마저 잘못될까 부모님은 전전긍긍하셨다. 그렇게 나는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게 되었다. 정규 교육 과정?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었다. 나는 그저 '노는 게 제일 좋은' 아이로 자라났다.


워크래프트, 공고, 그리고 패배감

중학교는 따라가지 못했고, 고등학교는 당연한 수순처럼 공고(공업고등학교)로 진학했다.
내 세상은 학교가 아니라 PC방에 있었다. 시험 기간은 공부하는 날이 아니라, 일찍 마쳐서 PC방에 가는 날이었다.

21살까지 내 인생의 전부는 '워크래프트'였다.

게임 속 세상은 화려했다. '워크래프트 XP' 클랜, 한글 패치를 만들던 '니오스', 전설적인 게이머들... 그들을 동경했다. 개중에는 서울대를 다니는 형들도 있었다. 게임 안에서는 다 같은 길드원이었지만, 모니터를 끄면 그들은 명문대생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고졸 백수였다. 그 격차가 가끔은 씁쓸했지만, 애써 무시하며 술과 게임에 나를 던졌다.


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만난 기회

교통사고 후유증으로 4급 판정을 받았다. 엄마가 발로 뛰며 알아봐 준 덕분에 산업기능요원으로 공장에 들어갔다. 낮에는 기계처럼 일하고 밤에는 술 마시고 클럽 가고 노래 부르며 흥청망청 살았다.

그러다 산업체 복무가 끝날 무렵, 공장 형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.

"야, 너 끝나면 뭐 할 거냐?
아무 생각 없으면 컴퓨터 좋아하니까 프로그래밍이나 배워봐."

그 한마디가 내 인생의 코드를 바꿨다.

홀린 듯 직업전문학교에 등록했다. 3개월. 미친 듯이 했다. 왜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재미있었다. 고등학교 때 게임만 하면서 막연하게 동경했던 '프로그램'이라는 걸 내가 직접 만드니까.

나는 학원에서 제일 잘하는 놈은 아니었다. 하지만 제일 열심히 하는 놈이었다. 모르는 게 있으면 먼저 수료하고 개발자로 일하던 그 공장 형을 귀찮게 쫓아다니며 물어봤다. 그게 내 유일한 무기였다.


"네 행동에 책임을 져라"

아버지는 평생 딱 하나만 강조하셨다.

"무엇을 하든, 네가 한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라."

나는 그 말을 좌우명처럼, 아니 족쇄처럼 차고 살았다.
내가 선택해서 공고를 갔고, 내가 선택해서 게임을 했고, 이제 내가 선택해서 코딩을 시작했다. 그러니 책임져야 했다. 남들보다 못 배웠으니 남들보다 더 구러야 했다.

그 절박함이 통했는지, 학원 3~4개월 차에 기회가 왔다.
"당장 개발자가 필요하대."

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원했고, 학원 재수강 중이던 누나와 함께 덜컥 합격했다.

그렇게, 아무것도 없던 공고 출신 게임 폐인은 20년 차 개발자가 되는 첫 발을 내디뎠다.
이것이 나의 시작이다.


[Writer's Note]
본 회고록에 담긴 모든 내용은 픽션이 아닌,
글쓴이가 지난 20년간 직접 겪은 100% 사실(Fact)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.


(2화에서 계속됩니다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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